안녕하세요 흑마돌이입니다.
오늘은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는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 조선의 4번 타자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 선수의 일대기에 대하여 포스팅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운명적인 만남 추신수와 이대호
① 이대호의 인생을 바꾼 추신수의 수영초 전학
지금의 프로야구선수 이대호가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많은 야구팬분들이라면 다 알고 계시듯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지난 시즌부터 한국으로 돌아와 선수생활을 하고 있는 SSG랜더스의 추신수 선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손에서 길러져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이대호 선수는 야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못할 만큼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요.
이때 이대호 선수가 다니고 있던 수영초등학교에 추신수 선수가 전학을 오게되고 추신수선수가 이대호 선수에게 같이 야구고 제안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이대호 선수는 처음에는 거절을 하게 되죠.
하지만 추신수 선수가 유니폼을 입고 야구를 하는 모습을 부러워하게 되고 할머니와 삼촌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이대호 선수도 야구를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한국야구의 전설 이대호의 야구 인생이 시작됩니다.
2. 경남고등학교의 에이스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입단
② 황금세대라 불린 82년생 세계 청소년 대회우승 활약과 이대호의 롯데자이언츠 입단
수영초등학교와 대동중학교를 거쳐 경남고등학교에 진학한 이대호는 투수로 당시 부산고 에이스 추신수와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고등학교 투수로 활약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시절 프로야구의 황금세대라 불리는 82년생들이 출전한 세계청소년 야구대회에 U-18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되어 우승을 차지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당시 대표팀 멤버로는 이대호와 추신수를 비롯해 프로야구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LG 트윈스의 이동현 투수, SK, 한화, LG에서 활약한 국가대표 2루수 정근우, 한화 이글스 레전드 김태균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대회의 활약과 평소 좋은 성적을 거뒀던 고등학교의 성적을 바탕으로 2001년 롯데 자이언츠 2차 1순위로 지명되며 고향팀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게 됩니다.
(당시 롯데자이언츠 1차 지명은 부산고등학교 추신수였지만 롯데 입단 대신 메이저리그 진출을 택하게 됩니다.)
3. 투수 이대호의 타자 전향 레전드의 시작
③ 호세의 영수 돈두뎃 사건과 이대호의 1군 데뷔
롯데 자이언츠에 지명을 받고 입단한 이대호의 처음 포지션은 타자가 아닌 투수였습니다.
하지만 덩치에 비하여 구속이 높지 않았고 계속된 부상으로 인하여 당시 롯데 2군 감독이던 우용득 감독의 적극정인 조언으로 포지션을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하게 됩니다.
그렇게 프로 첫 시즌인 2001년 시즌은 주로 2군에서 활약하다 시즌 막바지 당시 롯데의 외국인 타자 호세와 당시 삼성 라이온즈 투수 배영수의 프로야구 최대의 사건으로 호세가 잔여 시즌 출장정지를 받게 되며 자연스럽게 이대호가 1군에 데뷔하게 됩니다.
하지만 시즌 막판에 신인이라 많은 것을 보여주지는 못하였고 6경기 출장 8타수 4안타를 기록하며 프로 데뷔 시즌을 끝낸다.
4. 4번 타자 이대호 등극? 롯데의 암흑기 백인천의 등장
④ 백인천의 만행과 이대호의 무릎 부상
2001년 데뷔 시즌에서 시즌막판 잠재력을 보인 이대호는 2002년 프로 두번째 시즌에서 데뷔시즌 자신의 재능을 알아봤던 우용득 감독이 1군 감독으로 승격함과 동시에 팀의 4번 타자로 적극 기용되게 됩니다.
시즌 초반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하며 프로야구 전설 이대호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시즌 도중 성적 부진으로 든든한 지지자인 우용득 감독이 경질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후임으로 롯데 자이언츠팬들에게는 생각도 하기도 싫은 백인천 감독이 롯데자이언츠 감독으로 부임하게 됩니다.
백인천 감독은 현재 롯데 팬들이 꼽는 최악의 감독 단연 1위답게의 명성에 걸맞게 이대호에게 체중감량을 지시하며 쪼그려 뛰기와 오리걸음을 시키며 이대호의 양쪽 무릎을 작살내버립니다.
양쪽 무릎이 나가버린 이대호는 재활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고 부상으로 몸은 움직일 수 없고 술과 야식으로 인해 체중이 증가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4번 타자 무릎만 날려먹고 자신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5. 2006년 시즌 이대호 조선의 4번타자 본격적인 시작
⑤ 최고의 활약에도 불구 류현진의 등장으로 리그 MVP실패
2006년 시즌은 본격적으로 이대호가 프로야구 레전드로서의 시작을 기록한 시즌으로 기록됩니다.
오프시즌 통도사를 매일 등산하며 체중감량과 식이요법 등의 개선으로 좋은 컨디션으로 시즌에 임한 이대호는 타율, 타점, 홈런에서 리그 1위를 차지하며 삼성 라이온즈 이만수 이후 두 번째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본격적으로 프로야구에서 활약하게 됩니다.
리그 MVP도 충분히 노려볼 수 있을만한 성적이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신인으로 등장했던 한화 이글스의 류현진 또한 미친 활약을 펼치며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면서 KBO신인상, KBOMVP, KBO골든글러브를 쓸어가며 1루수 골든글러브에만 만족하게 되고 맙니다.
하지만 2006년 시즌의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데 성공합니다.
6. 2008년 시즌 첫 포스트시즌 진출과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⑥ 제리 로이스터의 등장 비밀번호의 롯데를 플레이오프로
2008 시즌 롯데 자이언츠는 구단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구단 사령탑으로 선임합니다.
1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수많은 롯데 팬들은 이때의 로이스터의 롯데를 잊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롯데 자이언츠의 최고의 순간 중 하나를 이끈 감독의 부임이었습니다.
이대호 역시 시즌 초반 많은 타점을 기록하며 좋은 성적을 이어나가는 듯싶었으나 여름이 되며 점점 타격 성적이 하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롯데 자이언츠는 8888577의 비밀번호 시절을 끝내고 시즌 최종 성적 3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3연패를 기록하며 힘 한번 써보지 못하며 탈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2008 베이징 올림픽의 대표로 발탁되며 금메달을 획득하는데 일조하는 활약을 펼치게 됩니다.
7. 전무후무 타격 7관왕과 9경기 연속 홈런
⑦ 8월 4일 ~ 8월 14일 9경기 연속 홈런 기록
2010년 시즌은 한국 프로야구와 이대호 선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시즌이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세계 신기록인 9경기 연속 홈런 기록입니다.
- 8월 4일 두산 베어스전의 김선우 선두를 상대로 솔로홈런(1경기 홈런)을 시작으로
- 8월 5일 임태훈 선수를 상대로 투런 홈런(2경기 연속 홈런)
- 8월 6일 한화 이글스전 정재원을 상대로 투런 홈런(3경기 연속 홈런)
- 8월 7일 한화 이글스전 안승민을 상대로 투런 홈런(4경기 연속 홈런)
- 8월 8일 한화 이글스전 류현진을 상대로 투런 홈런(5경기 연속 홈런)
- 8월 11일 삼성 라이온즈전 배영수를 상대로 투런홈런(6경기 연속홈런) (KBO 역대 최다 연속 경기 홈런 타이)
- 8월 12일 삼성라이온즈전 안지만을 상대로 투런 홈런(7경기 연속 홈런) (KBO 역대 최다 연속 경기 홈런 기록)
- 8월 13일 KIA 타이거즈전 로페즈를 상대로 솔로홈런(8경기 연속 홈런) (NPB 7경기 연속 홈런을 넘어 MLB 8경기 연속홈런기록과 타이)
- 8월 14일 KIA타이거즈전 김희걸을 상대로 홈런(9경기 연속홈런) (세계 신기록 달성)
그렇게 8월 4일 ~8월 14일까지 9경기 연속홈런을 기록과 시즌 최종 성적 타율 3할 6푼 4리, 44 홈런, 133타점, 174안타, 99 득점, 출루율 4할 4푼 4리, 장타율 6할 6푼 7리, OPS1.111로 도루를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1위를 기록하며 전무후무한 타격 7관왕을 달성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이대호의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롯데 자이언츠 역시 3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합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준플레이오프 1,2차전을 연속으로 승리하며 플레이오프행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였습니다만 기적같이 3,4,5차전을 연패하면서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을 하고 맙니다.
결국 비밀번호를 찍으며 하위를 전전하던 팀을 3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롯데는 제리 로이스터와의 재계약을 하지 않으면서 고려대 양승호 감독이 다음 시즌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즌 후 류현진을 제치고 리그 MVP까지 거머쥐며 8개의 트로피를 획득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바로 롯데와의 연봉협상이 남았는데 타격 7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성적으로 이대호는 연봉 7억 원을 롯데 자이언츠는 6억 3천만 원의 연봉을 제시하며 7천만 원의 의견차를 남긴 협상은 끝까지 마무리가 되지 못하면서 결국 연봉조정신청에까지 넘어가게 된다.
결과적으로 롯데 자이언츠가 승리하게 되며 결국 이대호 선수는 2011 시즌 연봉으로 6억 3천만 원에 도장을 찍습니다.
8. 2011 시즌과 FA 그리고 해외진출
⑧ 롯데의 100억 원 제시액 거절하고 오릭스 버팔로즈와 계약 후 일본 진출
롯데 자이언츠는 2011년 제리 로이스터 감독에서 양승호로 감독이 교체되며 많은 우려 속에 시즌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데는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잘 가꾸어놓은 팀의 기반으로 리그 2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 직행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의 상대로는 준플레이오프에서 기아 타이거즈를 3:1로 잡고 올라온 천적 SK 와이번스였습니다.
결과적으로 5차전까지 가는 승부 끝에 2:3으로 롯데 자이언츠는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게 됩니다.
이때의 탈락의 결정적인 패인을 꼽자면 플레이오프 1차전 9회 말 6:6 상황 1사 만루 상황 희생 플레이 하나면 팀이 승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손 탐욕의 결정적인 병살타 하나로 1차전을 놓친 것일 겁니다.
그렇게 롯데 자이언츠의 2011 시즌이 끝나고 이대호 선수는 FA를 선언 롯데 자이언츠와의 협상 끝에 최종적으로 롯데가 제시한 100억 원을 뿌리치고 일본 프로야구팀 오릭스 버팔로즈의 2년 7억 엔에 계약을 하며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하게 됩니다.
오늘은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는 롯데 자이언츠와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 이대호 선수의 일대기에 대해 포스팅을 해보았습니다.
너무 활약이 많은 선수이다 보니 포스팅 하나도 압축하기는 힘드네요.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주의 마지막 금요일 모두 파이팅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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